1.세훈은 성당의 앞 벤치 앉아, 빛에 물든 잎을 응시했다. 빛에 무성한 잎들에 자신의 존재는 모호해졌지만, 그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존재는 아름답게 유영했다.동일시였다.미지의 흔들림. 그는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다. 호흡이 무더워진다. 도대체 너와 무슨 상관인가. 혹여나 그게 틀린 것이라도 해도 세훈은 한 치도 후회가 없었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살아냈...
1. 밤은 고요했고, 우리의 숨은 고유하다. 트리를 장식하는 전구가 알알이 박혀 있는 듯한 육체. 맨발은 나무가 열기로 썩어가는 냄새로 감미로웠다 따스했다. 흰 벽엔 우리의 그림자가 점멸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든 벽의 장식을 다 떼어냈다. 완성하지 못한 불완전한 경구들. 단어 나열. 무심코, 커피를 엎어 갈색 자국이 남겨진 흰 페이...
"그래서." 그는 나를 탓하고 있었다. 하찮아진 나를 그는 동정하기 시작한다. 그는 라이터를, 자신의 리듬을 맞게 톡 톡 두드린다. 그 소리의 간격의 공백, 정적을 직면할 때에 내 숨은 멎는다. 최면 상태. 언어가 빠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내가 말했다. 왜 감정을 숨기느냐고, 내 침묵을 꿍꿍이가 있는 속내라고 그들은 자주 착각했다. 나는 숨어 내 무의식을...
여름밤이었다. 시골의 가로등은 드문드문 켜져 있었고, 길가의 시궁창에선 코를 찌르는 냄새가 뭉텅이로 떠돈다. 이 가로등의 빛살에 비치면 흰 살갗이 창백해 보여, 자세히 들여다보면 익사체 같지. 찬열은 한 걸음을 뒤에서 걷고 있었다. 그는 내 팔을 꾹 잡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 곧 그는 흰 반팔 티를 올리려고 한다. 나는 그에게서 떨어지려 옆길로 샌다...
찬열은 울부짖었다. 저기 저 무인도에서 찢긴 자신의 옷자락이 깃발이 되어 나부끼고 있었다. 밤이 되면 자갈돌로 절벽에 경수의 이름을 새기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남겨야 한다는 욕구는 불안정한 자신을 증명하고자 욕구와 다름 아니다. 경수는 없고, 자신은 여기에 홀로 남아 이 사랑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돌은 날카로워질 것이고, 자신의 미친 사랑으로 흉기가 되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구겨진 흰 침대시트에서 백현은 언 몸을 뒤척인다. 백현의 시선은 두꺼운 커튼 사이로 비치는 새벽의 푸르스름한 하늘로 닿는다. 백현은 자신의 불안을 잠시 그 색에 의탁한다. 자포자기의 쉼이었다. 하지만 결국 푸르스름한 기운은 곧 휘장처럼 흘러내려와 경수를 단단히 포박한다. 지금쯤 경수는 박찬열에게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듣고 ...
그는 고상하고 품위 있었다. 바래고 바란 누런 셔츠와 닳아 반질거리는 바지를 몸에 걸치고 흐느적 복도를 지나갈 때에, 그의 어느 몸 한 곳에 은닉되어 있는 고상과 품위는 둘 곳 없는 나의 시선을 잡아채 끝까지 놔주질 않았다. 이런 나의 끈질긴 욕망의 시선을 의식하고, 오만하게 날 내려다보는 그의 붉게 달아오른 눈가에선 늘 낯설고 수상한 냄새가 났다. 밤을 ...
머그잔이 깨진다. 큰 조각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작은 파편이 튀지 않을까 이래저래 둘러보다가 곧 그만둔다. 무릎이 시큰하다. 커튼을 친다. 바닥에 수놓아진 빛줄기를 따라간다. 커피의 검은 웅덩이. 다시 4년 전 도로로 난 되돌아간다. 점차 흐르며 제 몸짓을 키우는 피. 찻잔이 깨진 것도, 교통사고가 난 건 예기치 못한 봉변이었다. 봉변이라는 단어의 어감처럼...
경수를 처음 본 날, 그날은 어머니의 생일이었다. 벚꽃 잎이 흩날리던 날 태어난 어머니는 따스하고, 생동하는 햇살 아래서만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햇살은 어머니에게 쉽게 다가오고 쉽게 떠나갔다.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 진실을 견딜 수 없어했다. 몇 번의 실패에도 절대로 그 빛 같은 사랑만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 사랑만 없...
1. 생수병 꿈을 꾸었다. 원탁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주위는 온통 검고, 바닥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곳이 무엇인가, 짐작하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하릴없는 짓이었다. 꼼짝달싹 할 수 없이 옭아맨 두 사람의 시선. 나는 고개를 떨구고 원탁 밑에 숨겨져 있는 두 손을 맞잡는다. 나는 손가락으로 왼편 검지 손가락의 손톱 근처의 살을 누른다. 밴드엔 금세...
꿈을 꾼다. 공사가 끝마치지 못한 황폐한 건물 같은 그 공간. 애초부터 버려진 그곳. 안쪽, 유일한 벽에 침대가 놓여있고 바람에 휘장처럼 드리워진 흰 천이 너울거린다. 생의 끝자락의 마지막 보금자리. 그 침대 위 누군가가 앉아있다. 미동도 없는 뒷모습. 헐거운 흰옷. 드러난 흰 어깨. 굳은 물고기의 아가미와 같은 앙상한 팔목 뼈. …… 익숙한 인영. 생과 ...
1 현관문을 열자, 센서등의 빛이 소파에 앉아 있는 박찬열을 비춘다. 그리고 곧 다시 어둠이 끼친다. 어떠한 화면도 보이지 않고 그와 나의 억눌린 숨만이…… 서로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어린 두 짐승만이. 파국은 어쩌면 우리의 동질성 때문 일거야. 그래서 난, 뻔뻔해지고 이게 내가 너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그럼에도 난 어두워지면 박찬열, 너에게로 기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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